친일파 자손이 만든 가짜 ‘덕종어보’
【세상이야기 = 임동현 기자】 지난 18일, 잔치를 준비하던 국립고궁박물관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습니다. 올 7월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은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가 일반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날 오전, 이들과 함께 전시되는 ‘덕종어보’가 ‘친일파 자손이 만든 가짜’라는 기사가 몇몇 언론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었죠.
한 언론의 단독 보도로 시작된 이 파문으로 이날 전시공개의 주인공은 ‘문정왕후어보’도, ‘현종어보’도 아닌 ‘덕종어보’가 됐고, 이들과 함께 전시된 각종 어보들은 그야말로 ‘겉절이’ 취급을 당했습니다. 물론 김연수 국립고궁미술관장이 즉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지만 ‘덕종어보가 가짜’이며 게다가 친일파가 만들었다는 것에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보(御寶)는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등 존호를 올릴 때 사용하던, 왕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을 말합니다. 특히, 임금의 도장은 외교문서나 행정에 사용했던 국새(國璽)와 의례용으로 사용했던 어보로 구분되고, 임금의 집무용ㆍ대외적으로 사용되는 도장인 국새와 달리, 각종 행정문서가 아닌 왕실의 혼례나 책봉 등 궁중의식에서 시호ㆍ존호ㆍ휘호를 올릴 때 제작되어 일종의 상징물로 보관해 왔습니다. 왕과 왕비뿐 아니라 세자와 세자빈도 어보를 받았고, 왕과 왕비의 어보는 사후 왕실 사당인 종묘에 안치했습니다.
하나의 어보는 거북 또는 용 모양의 의례용 도장, 도장을 담는 내함인 보통(寶筒), 보통을 담는 보록(寶盝), 그리고 이를 각각 싸는 보자기와 보자기를 묶는 끈 등 최소 6개 이상의 다양한 유물이 한 묶음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어보는 3㎏~7㎏ 정도의 무게로 한손으로 들기에는 무거운 편이고, 글자가 새겨져 있는 몸통 부분의 보신(寶身), 거북ㆍ용 모양 등으로 장식된 보뉴(寶鈕)에 술이 달려 있습니다. 보뉴의 모양은 대한제국기에 들어서면서 거북이에서 황제의 상직인 용으로 변경됐습니다.
어보와 국새는 거북이나 용 모양으로 장식돼 그 모양과 크기가 거의 비슷하나 국새는 금으로 제작되었고, 어보는 금박을 입히거나 은 또는 옥과 같은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졌습니다. 국새가 정변이나 전쟁 등으로 대부분 소실된 반면, 어보는 종묘에 보관돼 있어 대부분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어보는 총 366점이 제작되어, 현재 323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가운데 316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문정왕후의 금보를 포함한 나머지 7점은 국립중앙박물관ㆍ고려대박물관에 보관돼 있습니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출판)
우선 한 번 보죠. ‘덕종어보’는 성종 2년(1471년) 성종이 세자 신분에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의경세자에게 ‘은문의경왕’이라는 존호를 올리면서 만든 어보로 2015년 미국 시애틀박물관으로부터 환수를 받은 뒤 이번에 공개됐습니다. 환수 당시 문화재청은 시애틀박물관과의 반환 합의를 부각시키면서 ‘진짜 덕종어보’를 찾았다는 자화자찬을 계속했었죠.
이런 어보가 가짜, 그것도 친일파가 만든 가짜라고 하니, 게다가 가짜가 버젓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다고 하니 국민들의 비난이 거세질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문화재청은 일단 어보가 1924년 종묘에서 분실당한 후 재제작한 것이고 육안 감정 결과만 믿고 진품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일단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연수 관장은 말합니다. “우리도 1924년 동아일보 자료를 보고서야 알았다.”
동아일보 자료에 따르면 1924년 ‘덕종’과 ‘예종어보’ 5과가 도난을 당했고 당시 종묘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항구가 이 사건으로 인해 징계를 받았답니다. 이항구는 바로 ‘친일파’ 이완용의 아들이죠. 그런데 문화재청은 이 사실을 지난해에 이미 알았음에도 그동안 쉬쉬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고궁박물관 측은 “올 초 회의에서 이 문제를 보고하려했다”고 했지만 지금 이 시간에서야 사건이 밝혀진 상황에서 문화재청이 쉬쉬한 것은 어쨌든 사실이 되고 말았죠. 문화재청과 고궁박물관도 이 부분은 인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덕종어보’는 가짜가 아닌 ‘재제작품’이며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어보를 분실하거나 훼손하면 바로 재제작을 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왔다. ‘덕종어보’도 1924년 분실 후 제작된 것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전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성분분석에서 구리의 함량이 70%가 넘었답니다. 조선시대 제작된 어보들은 모두 금 함량이 60% 이상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구리 함량이 많은 어보를 과연 제재작한 어보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인 거죠.
김연수 관장은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금속의 경우 비파괴 감정을 실시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일부 소수의 전문가 의견만으로 진위를 결정하는 현 상황에서 이런 일이 안 벌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떤 전문가가 참여했고 어떤 의견이 나왔는지를 공개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안된다’는 답만 돌아오네요.
설사 문화재청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국민의 정서에는 이미 ‘친일파가 만든 덕종어보’라는 인식이 박혔습니다. 거기다 금이 아닌 구리로 뒤덮인 어보라면 충분히 ‘가짜’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이 ‘가짜’가 왜 고궁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더불어 이런 심각한 상황을 이제까지 알리지 않은 문화재청을 불신하게 되겠죠.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덕종어보’를 비롯한 ‘문정왕후어보’, ‘현종어보’ 등은 결국 남의 나라에서 반환받은 유산들입니다. 즉, 문화재청과 민간단체 등이 힘을 모으지 않았다면 이들은 지금도 타국의 박물관이나 타국인의 손에 쥐어져있을 겁니다. 왕실의 자랑스러운 역사의 기록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동안 지켜주지 못하고 타국을 떠돌아야했던 우리 문화유산의 안타까운 역사를 증거하는 기록이기도 하죠.
그런 면에서 제안하나 할까요? 전시를 하되 이 모든 것들을 다 알리고 전시를 하는 겁니다.
“지금 전시된 ‘덕종어보’는 1924년 도난당한 후 재 제작됐지만 일제 친일파들에 의해 금이 아닌 구리를 주로 한 어보로 우리 앞에 나타난 ‘비운의 어보’다. 우리는 이 어보에서 일본과 친일파의 기세에 눌린 채 사라져버린 순종 황제와 대한제국의 슬픔을 보게 된다. 박물관은 이 안타까운 굴욕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이 어보를 공개한다.”
이렇게 요.
네, 차라리 솔직해집시다. ‘재 제작품’이라고 어떻게든 ‘가짜’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 보다는 왜 이런 어보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어보가 지금 우리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를 탁 털어놓고 알리자 이 말입니다. 우리는 어쨌든 ‘덕종어보’를 지키지 못했잖습니까? 역사는 승리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굴욕의 역사도 중요합니다. 굴욕의 역사를 알아야 다시는 그 굴욕을 당하지 않으니까요.
그러기에 저는 딱 이 한 마디를 남기려 합니다. ‘지못미’ 덕종어보!
* 세상이야기가 새로운 코너 ‘뭐 있슈?’를 선보입니다. ‘뭐 있슈?’는 말 그대로 ‘무엇이 있냐’라고 물어본다는 뜻과 ‘More Issue’, 즉 우리가 보는 이슈에서 나아가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뜻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비판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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